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내가 매일 새벽에 다니는 등산코스 주변에는 30여 평의 작은 공간에 고작 운동기구 5-6개가 놓여있는 소규모 체력단련장이 10여개 있다. 이 소규모 체력단련장은 산 정상에 있는 꽤 크고 운동기구도 많이 있는 지자체 소속 체력단련장에 비해 초라하지만, 운동하는 등산객은 오히려 산 정상 체력단련장보다 훨씬 많다. 얼마 전 소규모 체력단련장에 들러 운동하면서 안 사실인데, 소규모 체력단련장은 주로 70대 노인 1-2명이 시에서 허가받지 않고 임의대로 조성하여 자발적으로 매일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소규모 체력단련장은 항상 누군가 빗자루로 깨끗하게 쓴 흔적이 있었다. 비가 제법 내린 오늘 새벽에도 누군가 깨끗이 쓴 흔적이 있는 소규모 체력단련장을 보면서, 나는 시골집에서 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내가 살았던 시골집의 구조는 본채와 본채 앞쪽에는 큰 마당이 있고, 우측에는 행랑채와 우물터와 꽃밭이 있고, 본채 좌측에는 100여 평의 텃밭이 있고, 본채 뒤쪽에는 장독대와 대나무밭이 있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자, 할머니는 나에게 매일 아침 일어나 마당을 쓸고, 가능하면 본채를 중심으로 빙 돌아가면서 집 안 전체를 빗자
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영화 시사회는 영화 개봉 전에 관계자를 초청하여 신작 영화를 미리 보여 주는 것을 말한다. 시사회는 제작진을 비롯한 영화사 내부 관계자를 대상으로 1차 완성한 영화를 점검하는 기술시사회와 극장 관계자와 배급 및 판권 관계자를 대상으로 하는 배급시사회가 있고, 다음으로 홍보차원에서 언론사 기자를 상대로 하는 언론시사회와 일반 관객을 초청하여 관객의 반응을 알아보는 관객시사회가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 때문에 영화가 나오기도 전에 영화의 줄거리는 물론 제작 및 배급에 대한 정보까지 다 오픈된다. 벌거벗은 시사회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영화를 보러가는 관객은 영화의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다 알고 가는 셈이다. 그러니까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은 시사회 같은 영화 관람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불과 20년 전만해도 영화 관계자나 영화마니아 외에는 영화 스토리를 전혀 모르고 영화를 관람해야 했다. 드라마도 20년 전까지는 방영되기 전에는 시청자들이 드라마 내용을 전혀 모르고 시청해야 했으나, 지금은 주인공이 캐스팅 될 때부터 드라마의 모든 것이 오픈되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방영되기 전부터 이미 스토리를 다 알고 있다. 자동차로
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4288.10.16 / 마음의 거울 / The Mirror of Heart 세상사람 다 속여도, 심경, 너는 속아지 않으리, I'll never deceive you (mirror of heart) 위 내용은 1955년 아버님이 카투사(KATUSA)시절 일기장 표지에 써놓은 문구다. 내가 중3 때, 사전의 힘을 빌려서라도 영어를 어느 정도 해석할 수 있다고 판단한 할머님은 나에게 위 일기장을 내놓으셨다. 그러니까 할머님은 내가 한 살때, 세상을 떠나신 아버님의 유품을 15년 정도 가지고 있다가 손자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 뒤로 지금까지 ‘마음의 거울’은 나의 좌우명 같은 존재였고, 그래서 내 주변에서 나로 인해 일어나는 상황이나 사건들에서 반사되는 나의 마음의 모습을 보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어제 저녁 늦은 시간에 최근 주변 사람들로부터 상처받은 마음도 달랠 겸, 서재에서 과거에 읽었던 책 한 권을 찾다가, 아버님의 일기장 ‘마음의 거울’을 발견하고 한참 동안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내 마음을 정확히 볼 수 있는 거울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사람의 감정과 생각이 잘 나타나 있는 얼굴을 ‘마음의 거울’이라고
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나도 요즘 아빠 따라서 글을 쓰는데, 영 힘든 일이 아님 / 하루에 하나도 완성 못해 ㅋㅋ / 그래도 일기 쓰듯이 매일 씀 / 언젠간 늘겠지 생각하면서,,, 지난 토요일 시집간 딸이 우리 가족 단체 카톡방에 올린 메시지다. 그리고 ‘행복의 기준’이라는 글도 아래와 같이 올려놨다. 행복의 기준,,,,,,,,,,,,,,,,, 며칠 전 회사 멘티와 점심식사를 했다. 멘티는 작년 인턴 과정 때 내가 멘토를 맡았고, 당당하게 우리 회사에 합격한 아직 회사생활이 1년도 안된 신입사원이다. 식사 도중 멘티가 나에게 물었다. “멘토님은 행복의 기준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는 것, 내가 하기 싫은 것 안하는 것” 답에 대한 고민도 없이 바로 튀어나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행복의 기준을 물어보면, 자신만의 관점이 아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기준을 말하곤 한다. 만약 무언가를 먹고 싶을 때 먹으면 그 게 행복이고, 그래서 행복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데, 남과 비교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본인의 행복을 놓치는 것 같다. 물론 공동체 생활에서 굳이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내 행복만을 챙긴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가로 15m, 세로3m 사이즈 간판을 주문한 고객이 긴 쪽(가로)을 1m 더 크게 늘려달라고 해서, 가로 16m, 세로 3m 사이즈 간판을 만들었다가 낭패를 당한 간판가게 사장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고객이 긴 쪽을 더 크게 늘려달라는 것은 긴 쪽을 더 높게, 즉 세로를 1m 더 크게 해달라는 뜻이었는데, 간판가게 사장은 길이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수학의 도형에서는 가로, 세로, 높이 등으로 어떤 모양을 쉽게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지만, 실제 일상에서는 가로, 세로가 위치에 따라 바꿔지기 때문에 긴 쪽, 짧은 쪽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위 예에서 긴 쪽을 더 늘려달라는 것은 고객의 생각과 같이 세로를 늘려달라는 의미로 실제 많이 적용되고 있다. 특히 처음 주문할 때는 가로, 세로 사이즈를 알려주면 되지만, 변경할 때는 일상에서 사용되는 표현과 수학 도형에서 사용되는 표현을 잘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긴 쪽을 더 크게 한다는 것은 짧은 쪽을 크게 한다는 것보다 면적을 더 많이 넓힌다는 의미가 들어 있어, 수학의 도형에 의한 표현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짧은 쪽을 크게 한다는 말을
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BC 2000년경 아브라함이 이끄는 히브리족이 가나안에 정착했지만, 엄청난 기근 때문에 BC 1700년경 이집트의 나일 강 하류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BC 1300년경 모세가 이집트에서 400년 동안 탄압받던 히브리족을 이끌고 다시 가나안으로 들어가면서 이스라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내부적으로 12지파의 이합집산과 외부세력의 공격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미숙하고 사회적으로 불안한 시대를 보내야 했다. 이 때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우면서 이스라엘이 국가다운 국가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한편 이스라엘 12지파 중 가장 약한 베냐민 지파 출신인 사울왕은 베냐민 지파만 중용하면서 12지파 중 가장 큰 유대 지파의 원성을 사게 되었다. 그래서 사울은 유다지파인 다윗을 경계하면사도 끌어안아야 할 처지가 되었고, 결국은 다윗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말았다. 그 후 다윗은 골고루 인사정책을 펴면서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었지만, 다윗 역시 자신들을 중용하지 않은 유다지파로부터 배척을 당했다. 이에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유다지파와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켰고, 다윗은 가나안의 변두리인 길르앗으로 도망가게
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우리나라나 세계 어느 나라나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는 권력을 잡는 동안 국민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희망찬 꿈과 함께, 시대에 맞는 다양한 정책을 통해 ‘평등사회’를 이루기 위해 고민한다. 평등사회는 가난한 사람이 없고, 못 배운 사람이 없고, 억울한 사람과 소외계층이 없는 사회, 그리고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기본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를 일컫는다. 그런데 ‘평등’은 모든 사람이 모든 면에서 같은 수준의 삶을 영위하는 것을 뜻하지 않고, 사람의 권리와 의무와 자격 등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주어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즉, 평등사회는 평등의 개념을 넘어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찍이 평등은 전근대의 전통적인 신분제도 및 각종 체제를 무너뜨리고 자유와 함께 근대 민주주의의 기초를 세움으로써, 모든 사람이 동등한 조건(권리, 의무, 자격)으로 사회 구성원이 되는데 커다란 공을 세웠다. 그러나 19세기 초 경쟁사회에 들어서면서 평등이 모든 사람의 권리와 의무와 자격을 더 엄격하고 더 동등하게 적용함으로써, 오히려 새로운 불평등 즉 빈부의 격차와 직업의 귀천을
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가수 유승준(스티브 승준 유·45)씨가 한국비자를 발급하지 않는 처분이 위법하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지만, 정부가 이를 다시 거부하자 재차 낸 소송의 첫 재판이 모레(6월 3일) 열린다고 한다. 앞서 유승준씨는 2002년 1월 해외 공연 등 명목으로 출국한 뒤 미국시민권을 취득해 논란을 일으켰다. 미국영주권만 가진 상태에서 공익근무요원 처분을 받았던 유승준씨가 미국시민권을 취득해 한국국적을 포기하면서 병역의무를 피했기 때문이다. 유승준 사태 이후 외국에서 태어나 외국국적을 얻었지만(속지주의),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이어서 한국국적도 가진(속인주의) 이중국적자도 자진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모든 사람은 국적이 하나이어야 하는데, 왜 이중국적자가 생겨 유승진씨와 같은 사태가 일어나야 하는지? 이는 전 세계가 국적에 대한 기준을 속인주의와 속지주의 두 가지로 다르게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속인주의(屬人主義)는 출생 시 부모의 국적에 따라 국적을 결정하는 원칙으로, 독일을 비롯하여 유럽 국가들이 사용하고 있고, 속지주의(屬地主義)는 어떤 나라의 영토 안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국적을 결정하는 원칙으로, 프랑
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새벽마다 등산할 때, 소나무 수백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소나무숲 벤치에서 잠시 쉬곤 한다. 솔향을 맡으면서 명상도 하고, 소나무숲에서 살고 있는 다람쥐와 까치와 참새가 함께 노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솔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새벽 나는 내가 던져준 과자를 보고 달려든 다람쥐 3마리를 보면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까이서 본 다람쥐 3마리의 얼굴이 다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순간 3마리 다람쥐에게 ‘다롱이’, ‘다순이’, ‘다돌이’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그리고 참새나 까치도 사람과 같이 분명 얼굴이 다 다를 것이고, 그래서 각각 이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울러 소나무숲에 있는 수백 그루의 소나무 역시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관찰해도 소나무의 얼굴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고, 나무 가지나 잎의 모양이 다 똑같아 수백 개의 소나무를 구분할 수 없었다. 나는 얼굴 없는 나무는 이름도 없어 불쌍한 존재라는 생각과 함께 하산을 서둘렀다. 그런데 벤치에서 일어서자마자, 모든 소나무의 각각 다른 얼굴이 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각각 다른 소나무의 얼굴은 바로 수피(나무
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중학교 2학년 때로 기억되는데, 어느 날 사회 선생님은 “지금까지는 개인이 국가를 위해 존재했지만, 오늘부터는 국가가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국가와 개인과의 관계에 대한 시험문제가 나오면, 전 년도와 반대로 국가가 개인을 위한 쪽을 선택해야 정답이라고 했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형이나 동생에게 피해가 안 되는 선에서 부모를 졸라서라도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라고 강조했다. 당시 우리 반 학생들은 담임선생님 덕에 다른 반보다 훨씬 많은 학생들이 도시 고등학교로 진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철학과 교수는 “이기주의는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지만, 개인주의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고 말했다. 철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이기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이 성공했지만, 이제는 개인주의를 지향해야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중학교 2학년(1973년) 때부터 우리나라에 제도적으로 개인주의가 사회 전반에 싹트기 시작했던 것 같다. 사실 이기주의가 팽배했을 때는 경쟁에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