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가수 유승준(스티브 승준 유·45)씨가 한국비자를 발급하지 않는 처분이 위법하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지만, 정부가 이를 다시 거부하자 재차 낸 소송의 첫 재판이 모레(6월 3일) 열린다고 한다.
앞서 유승준씨는 2002년 1월 해외 공연 등 명목으로 출국한 뒤 미국시민권을 취득해 논란을 일으켰다.
미국영주권만 가진 상태에서 공익근무요원 처분을 받았던 유승준씨가 미국시민권을 취득해 한국국적을 포기하면서 병역의무를 피했기 때문이다.
유승준 사태 이후 외국에서 태어나 외국국적을 얻었지만(속지주의),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이어서 한국국적도 가진(속인주의) 이중국적자도 자진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모든 사람은 국적이 하나이어야 하는데, 왜 이중국적자가 생겨 유승진씨와 같은 사태가 일어나야 하는지?
이는 전 세계가 국적에 대한 기준을 속인주의와 속지주의 두 가지로 다르게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속인주의(屬人主義)는 출생 시 부모의 국적에 따라 국적을 결정하는 원칙으로, 독일을 비롯하여 유럽 국가들이 사용하고 있고,
속지주의(屬地主義)는 어떤 나라의 영토 안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국적을 결정하는 원칙으로, 프랑스를 비롯하여 미국 등이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독일의 경우 혈연을 국적의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독일에서 태어나고 교육을 받아도 부모가 독일 국적이 아니면 독일 국적을 취득할 수 없다.
반면 프랑스는 프랑스에서 태어나서 교육받은 자라면 부모의 국적과는 상관없이 누구나 프랑스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올림픽 때 독일 팀은 하나같이 백인 선수로 구성되지만, 프랑스 선수들은 여러 인종으로 구성되는 것이 바로 속인주의와 속지주의의 차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속지주의는 속인주의의 민족주의적인 기존의 폐쇄적 국적 개념을 뒤엎는 발상으로, 속지주의 사상의 바탕에는 인류의 평등과 보편성이라는 진보적인 생각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속지주의는 프랑스나 미국처럼 역사적으로 다수 민족이 모여 국가를 세우고, 다문화주의 토대 위에 성장한 국가들이 주로 사용하는 편이다.
우리나라는 속지주의를 택하고 있는 미국과 달리, 속인주의를 택하고 있다.
그래서 세계 어디에서 태어나도 대한민국국적을 가진 부모의 자녀는 대한민국국적을 취득하게 된다.
속인주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몰라도, 몇 년 전까지 우리나라 사람의 이력서에는 본적이라는 게 있어 부모가 태어난 지역을 중요시했으나, 호적법 폐지 후 2008년 1월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되면서 본적은 등록기준지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속인주의 원칙에 따른 본적에 대한 잔재는 여러 곳에 남아 있는 편이다.
예를 들어, 전라도에서 태어난 사람은 물론이고 서울에서 태어났어도 부모 고향이 전라도면 전라도를 고향으로 여기고 있다는 게 좋은 예다.
그리고 각종 통계에서 지역 인구를 구분할 때, 속지주의 차원에서 그 지역에 거주하는 자가 대상이 되지만, 실제 깊숙이 들어가 보면, 특히 선거 때가 되면 부모의 고향 중심으로 뭉치는 속인주의 차원의 매너리즘에 빠지고 마는 것 같다.
그래서 전국 단위 선거일수록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민심보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지역 출신의 민심이 더 중요한 변수가 된다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각 정당은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재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유권자뿐만 아니라,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 지방 출신 유권자까지 염두에 두고 지역 민심잡기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선거에서 이기려면 속지주의가 아닌 속인주의 프레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경제 성적표를 나타낼 때, 국민 총생산(GNP)보다 국내 총생산(GDP)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을 보면, 세계는 속지주의 프레임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우리나라도 속인주의 현행 국적법에 속지주의를 일부 도입하는 국적법 개정안이 추진 중에 있다.
국적법 개정안에는 한국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 자녀에 대해 필기시험·면접 등 현행 국적취득 절차를 생략하고 신고만으로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고 한다.
[단상]
요즘 화이자 백신을 맞기 위해 미국으로 '원정접종' 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원정출산'과 함께 속지주의가 나은 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