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3년 보스톤 항구에서의 차를 내던지는 사람들 나타니엘 쿠리어, 1846년 한편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에서도 네덜란드계 이주민들에 의해서 차가 소개되기 시작하며 홍차의 수요를 증가시켰다. 1690년, 런던에서 미국으로 돌아온 한 저명인사는 보스턴 시내에‘런던 커피, 차, 코코아’가게를 개업하며 홍차를 미국에 소개했고 이후 홍차는 아시아, 유럽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을 장악했다. 이렇게 차 수요가 확장되자 영국은 식민지 미국에 수입되는 차에 세금을 부과하며 식민지 미국을 압박했고 이것에 반발하여 1773년 12월 동인도회사의 배 세척이 보스톤항에 차를 싣고 입항하자 50여명의 주민들이 원주민으로 변장 후 배에 올라 1만 5천 파운드의 차를 바다에 던져 버렸다. 저 유명한‘보스톤 차 사건’이 촉발된 것이다. 이 사건은 훗날 미국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되었고 전쟁이후 미국에서 홍차는 영국의 압정과 상징물이 되어 미국인들은 홍차 대신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보스톤항구를 출발하는 클리퍼 1851년, 피츠 휴레인 1845년부터 1875년 사이에 미국과 영국에서는 약 100개의 클리퍼선이 만들어지며 치열한 무역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때 미국에서 개발된 신형 운반선은 따라올 영국배가 없었을 만큼 속도가 뛰어났다. 1850년 12월 미국의 티 클리퍼 오리엔탈호는 95일이라는 기록적인 시간에 홍콩과 런던을 항해했고 당시 오리엔탈호에 실린 중국산 차는 영국배에 실린 차에 비해 배 이상 되는 높은 가격에 거래되었다. 이에 영국역시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영국은 유선형 선체에 1,600평방미터의 높은 돛대를 세운 쾌속선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일명‘티 클리퍼(Tea Clipper)’였다. 이후 영국은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배들을 건조하기 시작했고 이 무렵부터 매년 햇차가 출하되는 시기에 맞춰 차를 나르는‘티클리퍼’들의 레이스가 시작된 것이다. 한편 가장 먼저 런던에 도착한 배는 경매소에서 찻잎 무게에 따라 일정금액의 상금이 지급되고 시민들은 내기경쟁을 하는 일종의 축제로 자리 잡았는데 작품 속 티 레이스인‘1866년의 티 레이스’가 역사상 가장 박진감 넘치는 레이스였는데 이 해를 마지막으로 티
1860년대 티 레이스의 출발지였던 중국의 푸저우 항 레이스가 시작되기 3개월전인 1866년 5월 28일 저녁 5시, 중국의 푸저우 항구에는 선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4일 동안 천 이백 개가 넘는 상자로 포장된 찻잎 화물 560톤을 갑판아래 적재를 완료한 아리엘호의 선장 존 케이는 닻을 올리고 런던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그는 선원들에게 “아리엘호의 우아한 대칭미, 튼튼한 선체와 원자재, 돛의 비율등으로 인해 가벼운 바람은 아리엘호를 전진 시킬 것이고 나는 아리엘호가 시대적 발전속에 살아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아리엘호는 26,000 평방피트 이상의 돛을 가진 당대 가장 빠른 선박으로 증기선보다 더 빠른 16노트의 속도로 항해할 수 있었다. 역사상 가장 흥미진진했던 이 레이스는 중국산 차 무역을 둘러싼 드라마틱한 사연이 담겨있었다. 영국의 동인도 회사는 대항해시대가 시작된 1600년에 설립되어 장장 2세기 동안 중국차 수입의 독점권을 행사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한편 영국이 청나라에 선전포고를 하며 촉발된 1840년의 아편전쟁도 차 무역으로 촉발된 전쟁이었다. 당시 영국은 차 수입대금으로 자국의 은을 청에 지불하게 되어 국가 재정이 파탄에
1866년 티 레이스 중의 바다 위 아리엘호와 태핑호 1926년, 잭 스펄링, 유화, 1866년 9월 6일 런던의 템즈강 하구, 역사상 가장 흥분되고 땀을 쥐게 하는 레이스의 마지막을 향해 네 척의 배는 혼신의 힘을 다해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리엘호의 선원들은 맹렬하게 자신들을 추격하는 태핑호를 따돌리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이 청나라의 푸저우 항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이 레이스에 참가한 배는 2년 전 건조된 아리엘 호, 레이스 3년 전 진수되었던 태핑호 그리고 서모필레 호와 블랙아델 호였다. 배들의 위치는 신문을 통해 시시각각 런던시민들에게 알려졌고 거의 비슷한 속도로 레이스를 펼치는 티 클리퍼(Tea Clipper)들의 속도경쟁을 두고 도박사들의 내기가 속출했다. 당일 아침, 마침내 항구에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배는 아리엘 호였다. 아리엘호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환호와 박수가 끝나기도 전인 10분후 이번에는 태핑호가 항구에 입항했고 수 시간 후 세리카 호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