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1959) / 시인, 칼럼니스트
사람은 지성(知性), 감정(感情), 의지(意志), 이 세 가지 심적 요소(정신 활동의 근본 기능)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아우르는 지정의(知情意)를 그 사람 자체 곧 인격(人格)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성(인식능력), 감정(심미능력), 의지(실천능력), 이 세 가지 중에서 지성의 초월적 대상을 진(眞), 의지의 초월적 대상을 선(善), 감정의 초월적 대상을 미(美)라 여겨, 진선미(眞善美)를 사람이 추구해야 할 가치로 삼아왔다.
그런데 사람의 심적 요소 지정의(知情意)의 순서에 따라 사람의 가치 순서가 진미선(眞美善)으로 표현되어야 하는데, 의지의 대상 선을 진 다음에 두어 진선미(眞善美)로 표현된 것은 실천능력을 중시하는 서구의 중세 철학에 근거했다고 한다.
오늘은 중세철학이 순서를 앞으로 옮겨야 할 정도로 사람이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 선(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며칠 전, 선(善)을 행할 때, 즉 착한 일을 할 경우, 그 보상으로 18세기까지는 불로소득이 생긴다고 믿었고, 19세기 이후 근대사회까지는 정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알았고, 20세기 현대사회에는 희생이 따른다고 알았고, 21세기 지금은 ‘착한 일’ 무용론으로까지 인식되고 있다는 칼럼을 써서 발표했다.
그랬더니, 친구가 “다음 칼럼에서는 착한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한번 고민해봐- 우리세대, 우리의 삶, 우리의 가치체계에서 진지하게 고민해서 내세울 수 있는 착한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그리고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 모두가 납득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친구가 진정으로 생각하는 "착한 일"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라는 댓글을 보내왔다.
친구의 댓글을 보고, 과연 착한 일은 무엇이며 어떤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다가, 착한 일은 이론이 아닌 실천능력이기에, 실제 내 주변의 착한 사람들을 생각해봤다.
큰 딸로 태어나 형편이 어려운 부모님을 돕고 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대학도 포기하고 피아노학원을 20여 년 동안 운영했던 사촌 누나, 교인들의 뜻을 다 받아주며 평생을 헌신하며 남편의 목회를 도왔던 고모, 부모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며 어떤 심부름도 거절하지 않았던 조카,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말만 하며 양보를 잘 했던 친구,,,,
위 예에서, 착한 일은 나를 위한 행위가 아닌, 남을 위한 행위에서 나오며, 포기와 헌신과 순종과 양보가 핵심 키워드로 따라다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착한 일은 자기 생각을 내세우지 않고, 배려, 효도 등 도덕적 덕목을 중요시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착하다’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로 나와 있는데, 이는 ‘말이나 행동, 마음이 남을 생각하고 올바르며 친절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우리 삶 속에서 ‘착하다’의 의미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말하는 것과 달리, 주로 남이 말을 할 때 동의를 하고, 이를 잘 따라주며, 타인이 하는 일에 무조건적으로 도와줄 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우리 사회에 착한 사람 증후군(Nice Guy Syndrome)에 걸린 사람이 많은 편이다.
착한 사람 증후군은 남의 말을 잘 들으면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박관념이 되어버리는 증상으로, 꼭 말을 잘 듣는다는 생각보다도 착한 사람으로서의 이미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에 매여 있기 때문에 나오는 증상이다.
착한 사람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애쓰는 데 반해, 자신의 마음이 병들어도 남들에 대한 자신의 이미지를 먼저 신경쓰다 보니 놔두는 경우가 많다.
나도 청소년기까지는 할머님과 어머님 그리고 선생님으로부터 ‘착하다’는 말을 듣기 위해 무조건 말씀대로 따랐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 영향으로 어른이 되어서까지 착한 사람 증후군에 걸려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의사 결정, 행동 등을 할 때 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보다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중요하게 여겨 타인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면서까지 부모 형제를 도와준다거나, 남에게 배려하면서까지 자신의 일을 뒤로 미룬다거나, 타인의 의사가 옳고 그른지도 모르고 무조건 따르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고전적 의미의 착한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잘 보이지 않는지도 모른다.
현대적 의미의 착한 사람은 타인에게 잘 해주는 사람, 타인을 잘 챙겨주는 사람, 타인의 말을 잘 들어주고 따라주는 사람이 아니고, 자신을 우선순위에 놓고 먼저 자신을 배려한 후, 그 다음에 남은 여력으로 타인에게 배려하는 사람이 아닐까?
자신을 누구보다 가장 많이 사랑하는 것이 착한 일(사람)의 전제조건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 자신은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타인이기도 하다.
이제 현대철학이 사람의 심적 요소 지정의(知情意)의 순서에 따라, 사람의 가치 순서를 다시 진미선(眞美善)으로 바꿔도 될 것 같다.
[단상]
친구가 원하는 시원한 답은 찾지 못했지만, 친구 덕에 착한 일(사람)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친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