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1959) / 시인, 칼럼니스트
착한 일을 하면 어떤 보상을 받을까?
인류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수천 년 동안 노력해왔고, 그 결과 시대별로 다른 답을 계속 제시해왔다.
먼저 인류는 고대 신화시대부터 18세기까지는 권선징악(勸善懲惡, 착한 일을 권하고, 악한 일을 벌한다.)을 내세우며, “착한 일을 하면 복 받는다.”는 가치를 삶의 덕목으로 삼았다.
그래서 신화나 전설이나 고대소설은 대부분 “착한 주인공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내용의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인류는 수천 년 동안 믿고 지켜왔던 권선징악의 가치가 별 노력도 안하고, 스스로 변한 것도 없는데, 착한 일을 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부와 명예를 얻는다는 게 모순임을 알게 되었다.
인생의 성공이 불로소득이나 행운의 개념으로 적용되었던 게 모순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권선징악의 모순이 현존 질서를 타파하고 사회를 개혁하려는 데 목적을 두었던 18세기 계몽사상에 의해 드러나면서, 권선징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인류는 권선징악에 나오는 불로소득을 배제하고, “착한 일을 하면 남으로부터 정당한 평가와 대우를 받아 행복해진다.”는 가치를 추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19세기 이후 근대소설에서는 착한 일을 했다고 어디서 돈이 뚝딱 떨어지는 식의 내용은 찾아볼 수 없고, 간혹 착한 일을 함으로써 성공할 수 있는 노하우나 환경을 스스로 얻는 행운 정도가 묘사되었다.
그 후, 개인의 가치보다 대중의 가치가 중요시되는 20세기 대중시대에 들어서면서 인류는 착한 일을 하면 권선징악에 나오는 행운이나 정당한 대우를 받는 혜택이 아닌, 공동체나 남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정작 착한 일을 한 자신은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가치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즉, 대중을 위해 착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희생까지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소설은 권선징악이나 계몽사상을 다루지 않고, 인간의 내면을 파헤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희생이 요구되는 공동체 사상을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AI, IOT같은 문명이기로 인해 개인의 능력이나 가치가 최고조로 상승하면서, 대중을 위해 개인이 손해를 봐서는 안 되는 지금의 21세기 다중시대에는 착한 일 자체가 별로 중요하지 않고, 오히려 악한 일이 흥미를 일으켜 인기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인류는 착한 일을 할 경우, 18세기까지는 불로소득이 생긴다고 믿었고, 19세기 이후 근대사회까지는 정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알았고, 20세기 현대사회에는 희생이 따른다고 알았고, 21세기 지금은 ‘착한 일’ 무용론으로까지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세계 모든 종교도 18세기까지는 “신(神)을 열심히 믿고 덕을 쌓으면 복을 받아 자녀도 잘 되고, 좋은 일도 많이 생겨 행복하다.”고 강조했고,
19세기 이후 근대사회까지는 “신을 열심히 믿으면 갑자기 부나 명예가 생기는 게 아니라, 스스로 깨우침을 얻어 깨우침대로 행동하면 복을 받는다.”는 내용을 강조했고,
그리고 20세기부터는 “신의 가치와 세상의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신을 열심히 믿으면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고통을 당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21세기 지금은 착한 일을 하라고 강조하기는 커녕 ‘착한 일’ 무감각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인류의 종교 역시 “착한 일을 하면 어떤 결과를 얻을까?”에 대한 답을 소설과 같은 맥락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흐름보다 느려서 그런지 몰라도,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할머니는 “착한 일을 하면 큰 행운이 따른다.”고 말해주셨고,
대학교 다닐 때, 어머니는 “착한 일을 하면 법의 보호를 받아 정당한 평가를 받는다.”고 말해주셨고,
성인이 되었을 때, 삼촌은 “착한 일을 하면 높아지기보다 낮아지게 된다.”고 말해주셨다.
그러나 60이 넘은 지금은 어느 누구도 착한 일에 대한 기준이나 가치를 얘기해주지 않고, 나 역시 어느 누구에게도 착한 일에 대해 얘기해주지 않고 있다.
내일(6.6)이 제67회 현충일인데, 추념식 주제를 ‘대한민국을 지켜낸 당신의 희생을 기억합니다’로 정했다고 한다.
국토 방위와 국가 발전을 위해 목숨을 바쳐 희생한 순국선열들이야말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착한 일을 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착한 일’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가 과연 순국선열을 기릴 자격이나 되는지를 생각해보니, 순국선열들에게 죄송한 마음과 함께 두려운 마음까지도 든다.
우리 사회가 대중시대에서 다중시대로 넘어오면서 개인의 희생은 아예 사라져버린 것 같아 안타깝고, 그래서 순국선열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神(예수)도 인류 역사상 가장 착한 일(인류 구원)을 하면서 죽었다.
착한 일을 하면서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순국선열들은 신(神)을 닮은 위대한 자들이었다.
[단상]
착한 일을 한 후, 복 받기를 원했는지, 정당한 평가 받기를 원했는지, 희생을 감수할 생각을 했는지, 죽어도 된다고 할 정도로 신의 경지에 올랐는지, 아니면 착한 일에 아예 관심도 없었는지를 점검해보는 오늘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