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1959) / 시인, 칼럼니스트
중국의 왕이 부장이 남태평양 도서국가 등 8개국을 순방(5.26∼6.4)하면서 미국의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에 대해 반격하는 사이, 미국은 지난 1일 대만과의 경제 및 안보 협력 강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에서 빠진 대만과 경제 및 안보 협력을 강화해 대중 압박을 가하려는 의도가 아닐 수 없다.
지난 1일 세라 비앙키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와 덩전중 대만 경제무역협상판공실 대표는 미국과 대만이 ‘21세기 무역 이니셔티브(US-Taiwan Initiative on 21st Century Trade)’를 출범시키기로 합의했다.
미국의 한 고위 당국자는 “양국은 몇 주 내로 이니셔티브의 로드맵을 만들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일 것”이라며 “새로운 무역 협상을 시작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은 최근 인도·태평양 13개국이 참여하는 IPEF를 출범시켰지만, 대만은 IPEF에서 빠져 있었다.
대만이 직접 가입 의사를 밝혔고 미국 의회에서도 200명 이상 의원들이 가입을 촉구했지만, 대만이 IPEF에 들어갈 경우 중국의 반발이 심할 수 있다는 판단에 당시 미국은 대만을 IPEF에서 제외시켰다.
그러니까 이번 새로운 이니셔티브는 IPEF를 우회하되, 대만과 경제 협력을 지속하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미국과 대만이 새 이니셔티브를 통해 논의할 사항은 디지털 무역 표준, 노동자 인권, 환경 보호 기준, 비시장 접근 관행 철폐 등으로 IPEF에 제시된 의제와 거의 같아, 실질적으로는 IPEF에 준하는 논의를 진행하겠다는 의미다.
새 이니셔티브가 관세 논의 등은 포함하지 않아 의회 승인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점까지 IPEF와 같다.
대만은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 입장에서 한국처럼 중요한 나라다.
특히,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TSMC를 가진 반도체 최강국 중 하나여서, 경제안보 측면에서 중요성이 크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반도체 등 핵심 물자의 공급망을 구축하는데 있어 대만은 빼놓을 수 없는 나라다.
지나 러만도 미국 상무장관도 “대만은 매우 중요한 파트너”라며 “특히 반도체와 관련돼 있다”고 말하며, “대만과 경제적인 유대를 계속 강화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미국은 대만과의 경제 협력 강화에 이어 안보 협력 강화를 위해 대만에 미군이 개입할 가능성도 내비쳤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이 대만과 안보 협력 강화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미다.
중·러 두 대국과 우크라이나와 대만해협이란 ‘두개의 전선’에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만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2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대만에 대한 무기 지원과 관련해 “중국의 위협에 비례해 대만이 충분한 자위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필요한 방위물자와 방위서비스를 제공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엔 ‘직접 파병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거듭 확인하고 있는 미국이 ‘대만 유사사태’(대만 전쟁)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응하겠느냐는 물음엔 “이 둘(우크라이나와 대만)은 크게 다른 시나리오”라고 답했다.
대만이 중국의 침공을 받을 경우, 미국이 개입할지에 대해 그동안 지켜온 ‘모호성 전략’을 유지하면서도, 우크라이나와는 다르게 대응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수교국이 대만과 어떤 형태로든 공식 교류를 하는 것에 계속 반대해왔다”며 “무역 대화도 실질적으로 ‘하나의 중국’ 원칙에 위배된다”고 했다.
이어 “미국이 대만 카드를 고집하는 건 중·미 관계를 위험한 지경에 빠뜨릴 뿐”이라고 비판했다.
중국은 미국의 군사 지원 가능성에 대해 “중국은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는 데 결연히 반대해왔다”며 “이는 중국 내정에 대한 엄중한 간섭”이라고 경고해왔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한다는 이유로 한국을 비롯 제3국을 향해 경제 협력과 안보 협력 두 개의 카드를 꺼내드는 게 과연 정당한 건지, 세계는 디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단상]
미국과 중국의 싸움이 자국이 아닌 제 3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래도 즐거운 연휴(6.4∼6.6)가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