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1959) / 시인, 칼럼니스트
니오 일이 선시이피 노하리 -
자무인 무인에유도 니온 일이 선시이피끼 노하리 -
위 문구는 내가 대학 졸업 후 산에서 2년 동안 공부할 때, 운동 시작 전에 남이 눈치 채지 못하게 혼자만 외쳤던 나만의 목표이자 주문이다.
나는 일인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리라 -
지식, 무술, 인격 무엇에서도 난 일인자가 될 때까지 노력하리라 -
내가 위 주문을 외우고 나서 운동했던 이유는 대학 1학년 때 다녔던 쿵후도장 관장이 운동 시작 전에 항상 관원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혼자 말로 주문하는 모습이 뭔가 목표를 향한 강한 의지가 담긴 다짐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관장은 1주일에 한 번 정도 합기도 고수로부터 당시 유행했던 소위 도장깨기라는 도전을 받았다.
만약 도장깨기 대결에서 관장이 합기도 고수에게 지기라도 하면, 당장 쿵후도장 문을 닫고 그 지역을 떠나야 했기 때문에, 아마 관장은 도장깨기 대결을 항상 준비해야 했고, 그래서 혼자만의 주문을 외우며 스스로 마음을 다스렸던 것이다.
다행히도 관장은 무술 실력이 뛰어나 도장깨기 대결에서 매 번 합기도 고수를 이겼고, 그 때마다 관장이 이겼다는 소문이 주변에 퍼지며 타 도장의 관원들이 몰려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산에서 공부할 당시 운동하기 전에 외웠던 주문도 도장깨기 대결처럼, 사회에서의 경쟁에서 절대지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던 것 같다.
도장깨기는 유명한 무술도장을 찾아가 그곳의 강자들을 꺾는다는 일종의 무사수행 형식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화교를 통해 들어온 쿵후가 당수, 유도, 검도, 합기도 등의 도전을 받으면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특히, 당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새로운 계보의 태권도 도장이 문을 열 때마다 기존의 도장들이 도장깨기를 통해 견제하거나 쫓아내는 일이 다반사였다.
태권도의 경우, 1978년 9대관을 통합하면서 태권도 전체가 하나로 단일화되어 태권도 도장끼리 겨루는 도장깨기는 사라졌다.
그리고 한국의 무술도장이 21세기에 이르러 클럽 형식과 유치원 형식으로 변화하면서 도장깨기 관행도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도장깨기가 실력 없는 관장이 운영하는 도장은 문을 닫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부정적인 면이 있지만, 무술도장의 관장 정도 되면 날마다 피눈물 나는 훈련을 통해 일인자로 서 있어야 도장을 지킬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무술도장뿐만 아니라, 조직이나 단체에서도 그 조직이나 단체의 수장은 항상 그 분야에서 일인자가 되어야 하고, 그래야 그 조직과 단체를 지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도장깨기가 사라진 현대 사회의 수장들은 실력도 딸리고, 자세도 너무 안일하고, 조직을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지난 6월 1일 지방선거를 통해 지방정부와 지방의회 지도자 수천 명이 선출됐다.
바라기는, 지방선거에서 뽑힌 단체장과 의원들이 40여 년 전 쿵후도장을 지키기 위해 날마다 혼자만의 주문을 외우며 도장깨기 대결을 준비했던 관장처럼,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를 지키기 위해 날마다 발로 뛰며 일인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4년 임기를 보냈으면 한다.
우리 사회에도 도장깨기의 긍정적인 면을 살려 ‘@@깨기’ 문화가 많이 등장하여, 각 분야별로 일인자를 많이 배출하고, 그 일인자가 그 분야를 발전시키며 지켜내는 풍토가 조성되면 좋겠다.
최근에는 특정 분야를 선정하여 그 분야 일인자를 찾아내는 도장깨기 움직임이 많이 감지되고 있는 것 같다.
맛집 도장깨기와 오락실 도장깨기 그리고 장윤정, 도경완이 전국의 숨은 노래 실력자를 찾아가 족집게 노래 레슨을 선사하는 로컬 음악버라이어티 ‘장윤정의 도장깨기’ 등이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니오 일이 선시이피 노하리 -
자무인 무인에유도 니온 일이 선시이피끼 노하리 -
다시 나만의 주문을 외우며, 혹시 올지 모를 도장깨기 대결을 준비해야겠다.
[단상]
지금은 건강이 좋지 않아 거동이 불편하지만, 70년대에 배낭 하나 메고 전국을 다니며 도장깨기를 했던 합기도 고수(공인 6단) 삼촌이 그리워지는 금요일입니다.
1986년 2월 운장산 도실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