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검찰은 어제(29일) 화천대유 사무실과 관계사인 천화동인 사무실 등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동시다발적인 압수수색에 착수했다고 밝혔고,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도 어제(29일) "국민의힘 대표는 봉고파직을, 원내대표는 남극에 있는 섬에 위리안치시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화천대유, 천화동인, 봉고파직, 위리안치
요즘 회사 이름에 전례 없이 사자성어가 등장하고, 정치적인 공세에도 사자성어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사자성어가 대한민국 에 아직도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는 구태 언어로 전락한 사자성어가 다시 부활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다.
사자성어(四字成語)는 주로 옛날에 있었던 중국 고사(故事)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고사성어(故事成語) 중 네 자로 이루어진 관용어로 교훈이나 유래를 담고 있다.
여기서 고사성어는 중국 옛날 이야기를 바탕으로, 사자성어는 네 글자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에 엄밀히 구분하면 고사성어와 사자성어는 다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자성어가 고사성어의 범주 안에 있어 중국 고사의 배경이나 유래를모르고 단어 자체만으로 사자성어를 이해한다는것은 여간 쉽지가 않다.
나는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을 접하면서 “내가 왜 또 중국의 옛날 이야기를 알아야 하지?” 라고 내 스스로에게 자문하기도 했다.
한국도 아니고 중국의 옛날 사람들의 가치관에서 나온 사자성어가 시대가 급변하면서 생명력을 잃은 지 오래 되었고, 그래서 현대인의 가치관과는 별로 부합되지도 않은 사자성어가 나에게 썩 달갑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 회사 이름의 경우 한자에서 한글이나 영어로 바뀐 지가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한자 중에서도 사자성어(고사성어)가 회사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자성어가 과거에는 모든 공무원 시험에 꼭 나올 정도로 중요한 언어였고, 사자성어를 많이 사용해야 유식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품격 있는 고급 언어였다
그러나 지금은 주로 연말연시에 언론 매체가 한 해를 요약해서 표현할 때나 원로 정치인들이 우회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할 때 쓰이고 있는 정도다.
그러니까 사자성어가 이제 구태 언어이고, 고전적인 냄새가 나는 언어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물론, 함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자성어가 꼭 필요할 때 한 번씩 사용되는 것은 괜찮지만, 우리 일상에 너무 깊숙이 들어와 빈번하게 사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1,3,5,7,9 홀수를 좋아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짝수를 좋아하는 중국도 4라는 숫자를 싫어하는데, 사자성어가 우리나라에서 지식층들의 언어를 상징하는 관용어로 사용되어왔다는 게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바라기는, 우리나라가 이제는 연말연시에 사자성어로 한 해를 요약할 것이 아니라, 서양처럼 글자 수에 상관 없는 키워드로 한 해를 요약하면 좋겠다.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은 고사성어이자 사자성어고, 봉고파직과 위리안치는 사자성어지만 고사성어는 아니다.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은 주역(周易)에 나오는 중국 고사에서 만들어진 언어이고, 봉고파직과 위리안치는 고사에 나오지 않고, 글자 자체의 의미로 만들어진 언어이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에 교수신문은 아시타비(我是他非,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를, 한국국학진흥원은 본립도생(本立道生, 기본이 바로 서면 도가 생긴다)을 2020년 사자성어로 선정한 바 있다.
올해(2021) 연말에는 사자성어 대신 글자 수에 상관 없는 키워드로 2021년 한 해을 요약해보면 어떨까?
[단상]
9월의 마지막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화천대유 : 하늘의 도움으로 천하를 얻는다.
천화동인 : 마음먹은 일을 성취할 수 있다.
봉고파직 : 부정을 저지른 관리를 파면시키고 관고를 봉하여 잠그는 일
위리안치 : 죄인이 거처하는 집 둘레에 울타리를 치고 가두어 두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