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어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고등학교 동기(친구)와 함께 공덕시장 안에 있는 허름한 식당을 찾았다.
그런데 60대 초반인 친구는 식당에 들어설 때부터 나올 때까지 줄곧 서빙하는 40대 중년 아줌마에게 무척 관심이 많았다.
원래 성격이 깔끔하고 내성적인 친구는 평소 사람들에게 친절한 편이 아니었는데, 어제 식당에서 서빙하는 40대 아줌마에게는 유난히도 친절했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예우를 해줬다.
나는 친구가 그 중년 여성을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참으로 이상한 일이구나” 라고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친구와 헤어진 후, 나는 시장 입구에서 노점상하시는 70대 후반 할머님에게 가서 면봉을 산 후 다음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노점상 하시는 할머님은 10년 전 나의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실 때 나이와 비슷하고, 또한 열심히 사시는 모습이 어머님 같아서, 나는 일부러 간단한 물건을 하나씩 사면서 건강도 묻고 서로 집안 애기도 하곤 해왔다.
어제 귀가 후 저녁에 친구로부터 ‘오늘 점심 고마웠어’라는 문자를 받고, 나도 ‘ 식당 아줌마 좋아하는 것 같던데, ㅋ ㅋ.’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아래와 같이 답장이 왔다.
‘친구, 나는 오늘 식당에 들어서면서 깜짝 놀랐어. 그 여인이 우리 어머님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지. 어머님은 40대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나는 40대 중년여성을 보면 나보다 나이가 어린데도 어머님으로 느껴져.’
그렇다, 친구에게 어머님은 8,90대 할머님이 아니고 언제나 40대 중반이었다.
친구는 40대 중반 이후의 어머님 모습을 실제로 보지 못 했기 때문에 어머님에 대한 친구의 시간과 생각이 멈춰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어머님의 모습이 70대 후반에 멈춰있었고, 그래서 노점상 할머님을 보면서 어머님의 모습을 떠올렸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나보다 한참 어린 나이의 군복 입은 장교를 보거나 나보다 한참 어린 초등학교 교사를 보면 아직도 상사 같고 스승 같다는 생각을 한다.
군대 생활과 초등학교 생활이 이어지지 않고 멈춰버리면서 시간이 많이 지나도 과거의 질서와 관계 속의 상황을 뛰어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제(25) 단상(옷차림)에서 “나의 어머님의 하루 목적지는 언제나 논밭이라는 일터였고, 그 일터에는 항상 ”자식 교육을 잘 시키겠다.“는 목표가 있었고, 그래서 어머님의 옷차림은 언제나 작업복이었고, 일하기에 편리한 간편복이었다.”는 내용을 보고 울컥했다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우리 시대의 어머님들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들에게 멈춰버린 시간과 생각으로 더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어제 만난 친구가 오늘 단상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고향 같이 멈춰버린 장소도 있다.
고향에 가면 옛 시절로 돌아가서 현실로 뛰어 넘어오기 힘드니까.
[단상]
우리 삶 속에서 멈춰버린 것(긍정적인,,,)들을 찾아보는 오늘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