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운조합이 특정 업체들과 수십 년간 용역 계약을 이어온 것으로 드러나 특혜 의혹에 휩싸였다. 또 특정 회원사 대표가 조합 임원으로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신고하지 않아 이해충돌방지 의무를 위반하고, 채용 과정에서 출신지를 묻는 등 채용절차도 어긴 것으로 나타났다. 감독기관인 해양수산부는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도 경고와 주의 등 가벼운 처분에 그쳐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22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해수부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한국해운조합 정기종합감사 결과보고(2021년 1월~2024년 2월)’를 보면, 조합은 1977년부터 회원사인 인천의 A업체와 석유류의 수송·보관·급유 등 공급 사업 계약을 맺고 지금까지 47년간 용역을 맡기고 있다.
1949년 창립한 한국해운조합은 여객선, 화물선, 유조선 등 2300여개 해운업체를 회원사를 두고 있으며, 보험사업과 선박용 유류 공급, 여객선터미널 운영 등 사업을 하고 있다. 공직 유관단체로 해수부의 감사를 받으며 공직자윤리법도 적용받는다. 석유류 공급사업의 경우 조합이 국내 4개 정유사 석유제품을 구매해 회원사 등에 공급하는 것인데, 현재 26개 업체에 용역을 맡기고 있다.
감사 대상 기간인 최근 3년간 조합이 A업체에 지급한 용역비만 15억8500만원에 달했다. 조합은 A업체 외에도 1999년부터 용역을 맡기고 있는 부산의 B업체에 약 55억원, 1992년부터 용역을 맡긴 전남 목포의 C업체에는 12억5000만원을 각각 용역비로 지급했다.
조합은 ‘상호 반대 의사가 없는 한 1년 단위로 자동 연장된다’는 내부 계약조항에 따라 계약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감사보고서는 “최초 계약 체결 이후 추가 공고가 없었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사업물량 확보를 통해 업체가 이익을 보고 있다”며 자동 연장 기간을 합리적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조합의 감사·이사 등 임원으로 재직 중인 회원사 대표가 조합 이사회와 감사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직무 관련 거래 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도 확인됐다. 조합 임원은 이해충돌방지법 적용 대상인데도, 조합과 회원사 대표 모두 직무 관련 신고 등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다.
조합의 몇몇 지부는 신규 직원 채용 과정에서 지원서에 응시자의 본적·성별·사진·학교명 등을 기재하게 하고 이를 서류·면접 심사위원들에게 제공하는 등 공정채용절차법을 위반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 외에도 주의처분을 받고 1년이 경과되지 않은 직원들에게 포상을 수여하거나, 비상근 임원의 회의수당을 허위로 지급했다. 해당 감사에서는 총 13건이 적발됐으며, 해수부 감사담당관은 기관과 개인에 대해 경고와 주의 등을 처분 조치했다.
임 의원은 “공직 유관단체이자 해운업계를 대표하는 해운조합이 특정 업체들과 장기간 특혜성 계약을 맺고 공직윤리 위반 행위를 지속적으로 벌일 수 있었던 이유는 해수부의 부실한 관리감독 때문”이라며 “솜방망이 처벌에 그칠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재발 방지를 위한 실효성 있는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