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어제 오후 모 그룹 경영고문을 만나기 5분 전, 경영고문실이 있는 최신형 건물 화장실에 들러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세면도 했다.
그런데 어제 아침 운동을 마치고 샤워할 때와 달리, 거울에 비친 내 얼굴에 주름이나 잡티가 별로 보이지 않았고, 피부도 탱탱하여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당당하게 경영고문실에 들어섰고, 경영고문과 대화하면서도 은근히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어제 저녁 귀가하여 씻으면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나는 크게 자존감을 상실하고 말았다.
어제 오후 이용했던 최신형 건물 화장실 거울은 약한 칼라가 들어있고, 세면대와 거울의 거리가 약간 멀어서 그런지 몰라도,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나름대로 멋있게 보였지만,
우리 집 화장실 거울은 칼라가 들어있지 않은 환한 거울이고, 세면대와 거울의 거리도 가까운 편이어서, 잡티도 많고 피부도 탱탱하지 않은 내 얼굴이 그대로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젊고 피부가 좋은 사람도 현미경 같이 잘 보이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면 어제 나같이 자존감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
안경은 사람이 바깥세상을 환하게 보기 위해 시력의 정도에 따라 돗수가 있지만, 거울은 사람 스스로가 자신을 아름답게 보기 위해 연령대에 맞는 별도의 돗수가 있지 않은 것 같다.
어제 두 개의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비교하면서, 거울도 사람의 자존감을 살려주는 돗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거울은 잘 보이는 게 목적인 안경과 달리, 아름답게 보이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 늙어가면서 시력이 떨어진 점을 감안하여 시력에 비례하는 거울을 만들어서, 최소한 날마다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자존감을 상실하지 않는 거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력이 좋은 20대와 30대 거울은 환한 거울로, 40대와 50대 중년의 거울은 옅은 칼라가 들어있는 거울로 만둘고,
60대와 70대의 거울은 짙은 칼라가 들어있는 거울로, 80대와 90대의 거울은 더 짙은 칼라가 들어있는 거울로, 즉 연령대에 맞는 자존감 거울을 만들면 된다.
그래야 나이가 들어도 어제 나같이 자신의 얼굴에 대해 자존감을 상실하지 않고, 계속 거울을 통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면서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우리가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거리나 여러 환경에 의해 자존감 거울 보다 훨씬 아름답게 보일 텐데, 굳이 자신의 결점까지 보이는 거울을 비치해 놓고, 날마다 거울을 보면서 실망할 필요가 없다.
오늘 아침 전주에서 거울 가게를 하는 지인에게 카톡으로, 칼라가 들어있는 거울을 살 수 있냐고 물었더니, 노인들이 주로 찾는 거울이라면서 고령일수록 자신이 멋있게 나오는 칼라거울을 마술거울이라며 좋아한다고 했다.
최신형 건물뿐만 아니라, 호텔이나 백화점에서도 짙은 칼라가 들어있는 거울을 비치하여 이용하는 고객들의 모습을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는 편이다.
우리 가정에서도 모공이나 잡티까지 보이는 환한 거울은 떼어내고, 적당히 칼라가 들어있는 자존감 거울을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
“거울처럼 희미하게밖에 비추지 않는다.”라는 비유가 중세의 상징주의를 대변하고, “거울처럼 확실히 있는 대로 비춘다.”라는 비유가 근대의 리얼리즘을 대변하고,
“거울처럼 아름답게 비춘다.”라는 비유가 현대의 휴머니즘을 대변하는 것 같다.
고령인구가 많은 현대는 자존감 거울이 어울리는 시대다.
[단상]
오늘은 우리 주변에 걸려있는 거울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어떨까요?
(거울 제작사에 돗수가 있는 자존감 거울을 만들어보라고 제안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