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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다가오는 斷想] 개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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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우리 집은 동네 한 가운데 있어, 이웃집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마당 앞쪽에는 A권씨 집이, 마당 좌측에는 김씨 집이, 본채 좌측에는 텃밭을 지나 B권씨 집이, 본채 뒤쪽에는 서씨 집이, 본채 우측에는 꽃밭을 지나 C권씨 집이, 그리고 마당 우측에 있는 행랑채 쪽에는 길이 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우리 집을 둘러싸고 있는 5개의 이웃집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담이 모두 달랐다.

 

마당 앞쪽의 A권씨 집과 경계에는 흙담이 있었고, 마당 좌측의 김씨 집과 경계에는 돌담이 있었고, 본채 좌측의 B권씨 집과 경계에는 굵은 대나무를 쪼개서 엮어 만든 울타리가 있었고,

 

본채 뒤쪽의 서씨 집과 경계에는 무궁화나무가 심어진 울타리가 있었고, 본채 우측의 C권씨 집과 경계에는 대나무가 빽빽이 심어진 울타리가 있었고, 행랑채는 그 자체가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우리 집이 제일 먼저 지어졌고, 그 뒤로 이웃집들이 집을 지으면서 새로 담이나 울타리를 만들다보니, 우리 집을 둘러싸고 있는 담이나 울타리가 이웃집에 따라 달랐던 것 같다.

 

50년 전만해도 이웃과 사이좋게 사는 시대라, 음식이나 과일 등을 이웃과 서로 나누는 시대였다.

 

그래서 간단한 물건이나 음식 등을 주고받을 때는 길과 연결되어 있는 대문을 이용하지 않고, 집과 집 사이 경계에 있는 담이나 울타리에 나 있는 소위 '개구멍'이라고 하는 작은 통로를 이용했다.

 

나도 어머님이 심부름을 시키면, 우리 집 대문 쪽에 있는 C권씨 집을 제외하고, 대문이 멀리 있어 시간이 꽤 걸리는 이웃집에 갈 때는 항상 개구멍을 이용하곤 했다.

 

마당 앞쪽의 A권씨 집을 드나드는 개구멍은 무너진 흙담 쪽이었고, 마당 좌측의 김씨 집을 드나드는 개구멍은 낮은 돌담 쪽이었고, 본채 좌측의 B권씨 집을 드나드는 개구멍은 대나무로 만든 작은 문이었고,

 

본채 뒤쪽의 서씨 집을 드나드는 개구멍은 겨우 사람 한 명 다닐만한 나무와 나무 사이 공간이었고, 본채 우측의 C권씨 집은 우리 집과 대문이 가까워서 개구멍이 없었다.

 

우리가 집을 짓고 담이나 울타리를 만드는 이유는 밖으로부터 집 안을 보호하고, 도둑이나 나쁜 세력으로부터 침입을 막기 위함이다.

 

또한 모든 물건이나 사람이 대문을 통해서 드나들어야 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최소한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 우리 마을 대부분의 집은 이웃과 경계선 상에 있는 담이나 울타리에 개구멍이 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문만을 통한 소통이나 유통은 시간이 걸리고, 뭔가 원칙이 필요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개구멍을 통해 시간도 단축하고, 서로 인간적인 정도 나누었던 것 같다.

 

당시는 마을뿐만 아니라, 학교에도 사방에 개구멍이 나 있어, 등하교 시, 정문 외에 개구멍을 자주 이용했고, 부모님들도 도시락이나 준비 자료를 갖다 줄 때, 개구멍을 이용했다.

 

아마 유교의 덕목 인의예지신에 따라 만들어진 조선시대 한양의 4대문(-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소지문)도 지역과 지역을 경계하는 담에 나 있는 꽤 큰 개구멍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개구멍은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보이지 않았고, 학교 담도 높은 벽돌담으로 바뀌었고, 고등학교 때는 벽돌담 위에 뾰족한 쇠창 같은 것이 꽂혀 있어, 담이 38선 같이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우리가 지구를 하나의 마을로 생각하여 지구촌이라고 부르는데, 지구촌도 예전에는 국가와 국가 사이의 국경선에 개구멍이 있어 여권이나 비자 없이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개구멍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월담만 해도 처벌을 받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물론 개구멍이 떳떳하지 못하게 몰래 드나드는 나쁜 통로라는 것을 50년 전 우리 마을 사람들과 학교 선생님들과 지구촌 사람들이 모를리가 없었다.

 

그런데 왜 당시는 개구멍을 허용했고, 그 개구멍을 아름다운 소통과 유통의 통로로 사용했을까?

 

앞에서 언급했듯이 단순히 시간을 단축하고, 잔잔한 정을 나누기 위함을 넘어 뭔가 더 큰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단상]

더 큰 이유는 각자 고민해보시고, 직접 찾아보시면 좋겠습니다.

(50년 전 시골 우리 집을 둘러싸고 있는 이웃집에 대해 자세히 쓴 이유는 당시 마을 사람들도 내 단상을 읽는 독자이기 때문입니다.)

 

 


[멀리서 다가오는 斷想] 정규직전환, 소비자 관점에서도,,, 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어제 오후 거실의 에어컨이 고장 났다고 아내로부터 연락이 와, 에어컨 수리업체 5-6 군데에 전화했더니, 기계 결함이면 고칠 수 없고, 에어컨 설치도 모두 예약이 밀려 있어 1주일 이상 걸린다고 했다. 어느 친절한 수리업체가 에어컨 메이커 서비스센타에 전화헤보라고 해서 알아봤더니, 거기도 서비스 접수가 많아 15일 이상 걸린다고 했다. 최근 장마 후 낮 기온이 36도를 넘나들며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고, 밤에는 열대야현상까지 자주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비스가 안 된다니 나와 아내는 무척 난감했다. 그래서 에어컨 메이커에 다니는 후배에게 상황을 말했더니, 몇 년 전까지는 메이커가 수리업체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거나 비정규직 사원을 통해 빠른 서비스를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자체서비스로 돌렸기 때문에, 특히 성수기 서비스 품질지수가 현저하게 떨어졌다고 설명해줬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서비스센타에 전화해서, 8월 5일에 서비스를 받기로 했다. 다행히도 아내가 인터넷을 검색하여, 센서 고장일 수 있으니 전원을 껐다 켜보라는 정보를 얻어, 지금은 언제 또 멈출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에서 가동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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