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완전한 공동체에서 개인은 공동체의 일부이고, 기관이고, 세포다.
그래서 완전한 공동체는 개인이 아프거나 명예를 잃으면 공동체도 아프거나 명예를 잃게 되고, 반대로 공동체가 부패하거나 명예를 잃으면 개인도 부패하거나 명예를 잃게 된다.
아울러 공동체 중 누군가 아프거나 명예를 잃으면 이웃인 누군가도 아프거나 명예를 잃게 된다.
반대로, 완전한 공동체는 개인이 잘 되고 행복하면 이웃도 잘 되고 행복하고 결국은 공동체도 잘되고 행복하게 된다.
완전한 공동체는 개인과 이웃과 공동체가 운명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완전한 공동체에서는 개인이 잘 되도 이웃이나 공동체가 잘 되지 않고, 공동체가 잘 되도 개인이나 이웃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세상에는 수많은 공동체가 있지만, 대다수 공동체가 말로만 목표나 삶을 공유할 뿐, 실제로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 헐뜯고 이기심이 팽배한 불완전한 공동체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불완전한 공동체는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갈등 조정이나 개인과 개인 사이의 의견 조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공동체 중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기초가 되는 가족 공동체는 그래도 완전한 공동체로써 가족 중 한 명이 아프면 전체가 아프고, 가족 중 한 명이 잘 되면 전체가 절 된 것으로 인정하며 좋아한다.
원래 공동체는 자생적으로 형성된 하나의 사회적 관계였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공동체의 개념이 다양하게 출현했다.
나치즘의 민족공동체, 개별적이고 자율적인 공동체로서 국가형성의 근간을 이룬 미국의 Community, 이념과 국가를 포괄하여 생활의 내용을 공유하는 유럽의 경제공동체, 지역적 인접성과 문화적 유사성을 기초로 한 동아시아 공동체 등,,,,
이 모든 공동체의 핵심은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전체를 대표하는 공동체가 주체이어야 하고, 공동체에 속해 있는 개인이나 구성원은 공동체의 일부이고, 기관이고, 세포이어야 한다.
그리고 공동체의 구성원은 서로에게 책임이 있어야 하고, 내가 공동체의 일원인 것처럼 이웃도 공동체의 일원이고, 그래서 이웃도 내 일부이고, 나도 이웃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완전한 공동체를 만들 순 없지만 완전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원래 목표했던 공동체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국민이 “국가는 망하는데 나만 잘 되면 되고, 이웃이 굶고 있는데 나만 배부르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그 국가는 비전이 없을 것이다.
또한 국가는 부자인데 국민은 가난한 방향으로 간다면 그 공동체 역시 희망이 없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지난해 위기 속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10위 경제 강국에 진입했고, 1인당 GDP에서 사상 처음으로 G7 국가를 제쳤다”고 말했다.
국가는 부자가 되었는데, 국민은 희망을 잃고 더 가난해졌다는 현실을 감안해 볼 때, 문 대통령이 불완전한 우리나라 공동체를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완전한 공동체는 구성원과 공동체가 공동운명체인 공동체다.
존 던의 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나오는 구절에서 공동체의 본질적인 의미를 찾아보면 좋겠다.
"세상 어느 누구도 외따로 떨어진 섬이 아니다. /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 대양의 한 부분이다. / 흙 한 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 유럽은 그만큼 작아진다. / 모래벌이 씻겨나가도 마찬가지다./ 그대와 그대 친구들의 땅이 쓸려 내려가도 마찬가지다./ 그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 왜냐하면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단상]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를 더 사랑하고, 공동체에 속해 있는 이웃도 더 사랑하고, 그래서 공동체 속에서 꼭 필요한 구성원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