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사당역에서 수원 방향으로 500m쯤 가다보면 우측에 허름한 석재공장이 하나 있었다.
건축용 석재만 파는 다른 공장과는 달리 사당동 석재공장은 석재뿐만 아니라 돌로 만든 조각품도 판매했다.
당시 나는 석각에 관심이 많아 사당동 석재공장 전시장에 자주 들러 구경도 하고, 자그마한 조각품을 구입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 마음에 쏙 드는 작품(우비 입은 여인)이 하나 있어, 사장에게 얼마 주면 살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미대 교수를 겸하고 있는 사장은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은 팔지 않는다고 거절했다.
또한 내가 사진을 보여주면서 똑같이 만들어 줄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그렇게도 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첫 번째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을 팔지 않는 이유는 자식이나 마찬가지인 작품을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만약 내가 사장보다 ‘우비 입은 여인’ 작품을 더 사랑한다는 판단이 서면, 나에게 공짜로도 줄 수 있다고 했다.
두 번째 주문을 받지 않는 이유는 자신은 창작하는 예술가이지, 남의 생각대로 작품을 찍어내는 꼭두각시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진열되어 있는 작품들은 자신이 어느 상황에서 영감을 받아 그 영감과 결혼하여 낳은 자식이나 마찬가지여서, 자식을 돈 받고 팔 수 없듯이 작품도 팔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 결혼하겠다고 하면 허락하듯이, 자신도 누군가가 작품을 너무 사랑하여 그 작품과 결혼이라도 할 기세라면, 그 작품을 내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속담을 믿고, 10여 차례 사장을 설득한 후, 그 작품(우비 입은 여인)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시 작품 값은 절대 받지 않겠다던 사장의 고집을 뿌리치고, 나는 꽤 큰 금액의 감사 봉투를 전달했다.
나는 우리 집 거실에 있는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아주 멋진 작품(우비 입은 여인)을 보면서, 가끔 사당동 석재공장 사장의 창작과 작품에 대한 원칙을 떠올리곤 한다.
사실 나도 얼마 전 대신 칼럼을 써주면 편당 얼마씩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도저히 그럴 수 없어 거절한 적이 있다.
사당동 사장 말대로 나도 어떤 영감과 교감하여 얻은 내 칼럼을 남의 이름으로 세상에 내보낸다는 것은 자식을 돈 받고 파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지난달 신문사 기자로부터 5월 가정의 달을 주제로 칼럼 한편을 보내달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지금까지도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사당동 사장의 두 번째 이유처럼, 나는 내 스스로 창작하여 글을 쓰는 작가로서, 아직 가정의 달에 대한 영감이나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억지로 칼럼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신문사와 잡지사 등에서 나에게 칼럼을 요구하면, 나는 기존의 내 글에서 골라 게재하라고 하는 편이다.
예술가나 작가처럼 창작을 하는 사람이 첫 번째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이 세상에서 하나 뿐인 자식을 낳는 심정으로 창작을 해야 하고, 그래서 그 작품과 창작자는 자식과 어머니 관계이기에, 돈으로 흥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두 번 째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남의 요청에 의해 창작하는 분위기가 되어서는 안 되고, 내 스스로가 자유하면서 하는 창작 환경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목사도 설교 준비를 할 때, 제목을 정하면 그 틀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형식적인 설교가 된다는 이유로 제목을 정하지 않고 설교 준비를 한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설교에 힘이 있고, 영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고, 교우들의 정신을 개혁시키기도 한다.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의 삶을 써가는 작가이고, 우리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예술가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자식과 같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고, 남의 생각이 아닌 내 생각에 의해 자발적으로 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삶이 걸작이 될 것이고, 우리 스스로도 위대한 창작자가 될 것이다.
자유롭기보다 자유하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한다.
어제 제주시 애월읍 소재 바다뷰 카페(몽상드 애월)에서 만난 H 화가도 자신의 작품을 절대 팔지 않고, 남의 부탁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는 자유하는 예술가였다.
(H 화가는 3년 전 제주도로 여행 왔다가 제주도의 비경에 반해, 지금까지 줄곧 제주도에 정착하면서 제주도의 숨소리까지도 화폭에 담아내고 있는 자칭 '제주 화가'다.)
[단상]
내 삶의 가치를 아무에게나 팔지 않고, 내 스스로가 삶을 만들어가는 멋진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비 입은 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