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뉘 탓이냐 비단에 무늬를 놨다는 이 강산에 다섯 즈믄 겹 쌓아 솟은 바람터에 올라 보이느니 걸뜬 피뿐이요 들리느니 가슴 내려앉는 숨소리뿐이요 맡아지느니 썩어진 냄새뿐이요 그리고 따 끝에 둘린 안개 장막 저 쪽엔 무슨 괴물이 기다리고 있는지 그건 알지도 못하고 그러다 그러다 가게 됐으니 이게 뉘 탓이냐 신선의 산이라 했다는 걸 군자국(君子國)이라 했다는 걸 예의지방(禮儀之邦)이라 했다는 걸 집엘 가도 안을 자식이 없고 길을 걸어도 손잡을 동무가 없고 오래 거리를 다 뒤타도 이야기를 들을 늙은이를 볼 수 없고 봉 사이, 물결 위에는 스스로 달 바람이 맑고 밝건만 듣고 볼 사람이 없으니 이게 뉘 탓이냐 뉘 탓이냐 어느 뉘 탓이란 말이냐 네 탓 내 탓 그렇다 이 나라에 나온 네가 탓이요 그 너 만난 내가 탓이다 무얼 하자고 여기를 나왔더냐 아니다 탓이람 그 탓이다 애당초에 그이가 탓 아니냐 무얼 한다고 삼위(三危)요 한배(太白)요 그냥 계시지 못하고 홍익(홍익)이니 이화(이화)니 부질없이 이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신단 말이냐 그 탓이다 그이가 탓이다 그 한 탓에 이 노름이다 이게 뉘 탓이냐 가없고 변저리없는 아득한 한 누리에 둘은 없는 묵숨불 탔다면서 소리를 지
아들아! 가을이 저렇게 소리도 없이 왔다. 마당가의 석류나무가 네 주먹만한 열매를 맺었구나. 작년에도 두 알이더니 올해에도 변함없이 딱 그대로다. 석류나무는 더 굵은 열매들을, 더 많이 주렁주렁 매달아 우리한테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도 그만 힘이 부쳤나 보다. 나뭇가지가 턱없이 가늘어서 석류 두 알도 저렇게 간신히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구나. 아들아, 석류나무 밑동에 여린 줄기들이 오종종 모여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사람들은 그걸 보고 석류나무가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함께 자란다고 말하지. 먹여 살려야 할 식솔이 많이 딸린 가장을 보는 것 같단다. 그 새끼들은 어미의 뿌리에서 나온 것들인데, 어미가 취해야 할 양분을 빨아먹고 자란단다. 하지만 어미 석류나무한테서 실한 열매를 얻으려는 생각으로 나는 그 어린 것들을 이따금 잘라주곤 했었다. 매정하고 아까운 일이지만 할 수가 없었지. 나는 또 지난 여름 땅으로 낭자하게 뚝뚝 떨어지던 그 많은 석류꽃들을 생각한다. 아들아, 너는 주홍빛 석류꽃을 기억하느냐? 석류꽃도 봄날의 동백꽃처럼 온몸을 송두리째 내던지며 처연하게 진단다. 한잎 한잎 나풀거리지 않고 꽃받침에서 몸을 떼는 순간, 마치 결심
늘 그립고 늘 보고픈 고향, 둥근 달덩이 하늘에 두둥실 떠오르는 추석이 다가오면 발길이 가기도 전에 마음은 벌써 고향에 가 있습니다 어린 날 꿈이 가득한 곳, 언제나 사랑을 주려고만 하시는 부모님 한 둥지 사랑으로 함께하는 형제자매, 학교 마당, 마을 어귀, 골목길, 냇물가, 동산 어디든 함께 뛰놀던 친구들이 모두 다 보고 싶습니다 점점 나이 들어가시며 주름살이 많아지신 어머님, 아버님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마음 속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추석 명절 고향길엔 부모님께 드리고픈 마음의 선물이 있습니다 추석 명절 고향 가는 길엔 우리 가족, 우리 친척, 우리 민족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원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추석 명절 고향가는 길엔 추석에 뜨는 달만큼이나 환한 가족들의 행복이 가득해져 옵니다 - 용혜원 - - 그림 / 한가위 일러스트
바람부는 날 들에 나가 보아라 풀들이 억센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것을 보아라 풀들이 바람 속에서 넘어지지 않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손을 굳게 잡아 주기 때문이다 쓰러질 만하면 곁의 풀이 또 곁에 풀을 넘어질 만하면 곁의 풀이 또 곁의 풀을 잡아주고 일으켜 주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아름다운 모습이 어디 있으랴 이것이다 우리가 사는 것도 우리가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것도 바람 부는 날 들에 나가 보아라 풀들이 왜 넘어지지 않고 사는가를 보아라. - 글 / 류시화 - 바람 부는 날의 풀 - 사진 / 마이클 케나 Michael Kenna 사진작가
굽힐 줄 몰랐던 것은 아니다. 부러지면 부러졌지 굽힐 줄 모른다고 말하지만, 생각의 끝에서는 무수히 휘어지고 흔들리고 있었다. 살면 살수록 잃어버리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었다. 흔들리고 휘어질 때마다 생긴 응어리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마디져 끊어진 시간은 차라리 잃어버리는 것이 좋았다. 살아보니 때로는 휘어져야 부러지지 않더라. 꽃에 목숨을 걸지 마라. 살아보니 꽃은 최후에 피는 것이고, 삶을 푸르게 했던 것은 꽃이 아니라 응어리질 때마다 피어난 이파리더라.
가만히 바라보며 미소 지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잔잔한 미소의 파장이 널리 전해지도록 가슴 가득 미소를 담아봅니다 물방울이 강물과 하나가 됩니다. 작은 물방울은 큰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됩니다. 물방울은 주어진 데로 내려질 것이며 강물과 함께 흐를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을 두려워 하거나 우쭐대지도 않습니다. 물방울이 작다고 우습게 생각하지도 않으며 강물이 크다고 부러워 하지도 않습니다. 모두가 하나에서 왔음을 알기에 단지 지금의 존재를 받아들입니다. 그냥 지금 이순간, 하나가 되는 순간을 즐깁니다. 내가 여유롭다면 내 마음이 바다처럼 넓다면내가 부처님처럼 자비롭다면 세상의 어느 소리도 웃으면서 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웃자. 웃자. 웃자. - 글 그림 / 심연 용정운 - 출처 / http://www.zentoon.com
당신이 모든 것을 멈추고 고요해질 때 지혜가 바로 거기 있다. 그저 보고 들어라. 그 이상은 필요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 속에 드넓고 고요한 공간을 가지고 있다. 허공처럼 걸림 없고 지극히 고요한 그곳을 접해 보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알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알 수 없는 사람은 세상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 존재의 심연에 있는 나의 자아는 고요함으로부터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이름이나 형상보다 훨씬 더 깊은 차원에 존재하는 “나의 실체”이다. 나의 실체는 고요함이다. 고요함은 무엇인가? 바로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이 글을 인식하고 그 인식을 사고로 변환시켜 주는 내면의 허공이며 맑은 마음이다. 맑은 마음이 없다면 나는 인식하거나 사고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맑은 마음이 없다면 이 세상도 없다. 내가 바로 맑은 마음이다. 잠시 사람의 모습으로 변장한 맑은 마음이다. 밖이 소란함은 안이 소란한 것이요, 밖이 고요함은 안이 고요한 것이다. 주변에 잠시라도 고요함이 내려앉을 때면 귀를 기울여 보라. 다가온 고요함을 바라보고 주시하라. 밖의 고요함에 귀를 기울이면 안의 고요함이 깨어난다. 마음이 고요해져야 주변의 고요함을 알 수 있기 때문
과거·현재·미래를 초월하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니라. 과거라는 개념을 버려라. 지나간 흔적을 따라가지 마라. 미래의 계획도 따라가지 마라. 과거와 미래라는 생각을 끊어버려라. 현재라는 생각도 품지 말아라. 오직 ‘비어 - 있음’을 체험하는 상태에 머물러라. 어떤 대상에 대해 명상하지 말고, 마음이 흩어지지 않는 깨어 있음에만 머물러라. 집중하는 것도 아니고 산만한 것도 아닌 상태로 있는 그대로를 보도록 하라 스스로 밝고 투명한 각성이 곧 깨달음이다.투명한 각성 속에는 알려지는 대상도 없고아는 주체도 없다.오직 스스로 밝은 투명함만이 있다‘비어 있음’에 대한 각성이‘비어-있는’ 밝은 진리의 몸이며,늘 현존하는 해탈 상태이다.불성(佛性)은 수행을 통해 성취하는 것이 아니다.‘지금 - 여기’에 현존하는바즈라 사트바(持金剛佛)를 깨닫도록 하라. - '티벳 死者의 書'에서 - - 그림 / 매선님 - 蓮 -
성현은 행동을 앞세우고 범부는 말을 앞세우며 성현은 자신의 생각이 정의롭다고 생각을 하면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실천을 해나가지만 범부는 작은 일 하나를 하더라도 남들이 알아주고 칭찬해주기를 바란다. 석일봉스님저/누가 자네를 묶어놓았는가...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