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1959) / 시인, 칼럼니스트
20여 년 전, 교회학교 중고등부 학생들과 강촌에 있는 수련원으로 2박 3일 기도회를 다녀온 적이 있다.
첫째 날 저녁 기도회가 뜨겁게 진행될 때, 학생들에게 백지를 나눠주며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을 순위대로 5명 적고, 그들을 용서하는 기도를 하라고 했다.
둘째 날 저녁에도 찬양과 기도로 영성이 풍성해진 학생들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순위대로 5명 적고, 그들에게 감사하는 기도를 하라고 했 다.
그리고 셋째 날 아침 학생들에게 자신이 적어낸 두 장의 종이를 나눠주며 동시에 펴보라고 했을 때, 모든 학생들이 와- 하면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의 순위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순위가 거의 일치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당시 기도회에 참가했던 교회학교 교사와 학생 모두는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으로, 대인관계를 역설적으로 이해해도 전혀 이상이 없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위 예와 같이 학생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어른들도 사랑하는 부부간이나 세상에서 가장 큰 인연이라 할 수 있는 부모자식간의 관계에 있어, 사랑하는 사람의 순위와 괴롭히는 사람의 순위가 역설적으로 일치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인연이라 하는데, 인연은 그 관계에 있어 긍정적인 요소들과 부정적인 요소들이 대칭을 이루면서 형성되어야 정상적인 인연으로 발전할 수 있다.
만약, 긍정적인 요소건 부정적인 요소건 어느 한 쪽에 의해서만 관계가 형성된다면, 부정적인 요소로 형성된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긍정적인 요소로 형성된 관계도 오래 가지 못하고, 설령 오래 유지되더라도 항상 조심스럽고 불안하고 형식적인 관계로만 남게 될 것이다.
특히, 긍정적인 좋은 관계로만 유지되는 인연(관계)이 갑자기 좋지 않은 관계에 직면할 때,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우리는 많이 봐왔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사람의 좋고 나쁘고의 판단은 사람의 됨됨이로 판단되는 게 아니고, 판단하는 사람과 판단 대상이 되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가 선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악연으로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악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선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는 게 이를 입증해준다.
대인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키는 사람 자체 보다는 관계(인연)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나 자신과 어떤 관계에 놓여있는지, 특히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대칭을 이루며 안정적인 관계로 형성되어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좋은 사람이라는 의미 보다 나와의 관계(인연)가 좋다는 의미일 뿐이고,
누군가가 나에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나쁜 사람이라는 의미 보다 나와의 관계(인연)가 나쁘다는 의미일 뿐이다.
어차피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이 있고, 태생이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이기에, 사람 자체로만 인연을 만들어가야 한다면, 우리 사회는 좋은 관계(인연) 부재로 인해 불행한 사회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다행이도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우리 사회가 사람 자체가 아닌 관계 속에서 인연을 만들어가는 원리 속에 있기에, 그나마 행복한 사회로 발전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사랑하는 사람의 순위와 괴롭히는 사람의 순위가 일치하는 역설적인 원리에 의한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있기에, 그나마 아름다운 사회로 발전해 갈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오늘(3.28) 저녁 6시,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나는데, 두 분이 서로의 관계가 역설적인 원리 속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
[단상]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언젠가는 누군가를 사랑하겠다는 관심의 시작으로 이해하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