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어제 수도권에는 올 겨울 두 번째로 많은 눈이 내렸다.
나는 어렸을 때, 할머님으로부터 “눈이 내리면 날씨가 포근하다.”는 속담을 자주 들었고, 실제 눈이 내리는 날에는 항상 따뜻해서 밖에 나가 뛰놀았던 추억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제는 할머님이 들려준 속담과 달리, 눈이 내리는 데도 체감온도가 영하 15도까지 내려갔고, 그래서 그런지 길가에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어릴 적 할머님의 속담을 생각하고 있던 중, 같이 동행했던 친구가 “눈 온 다음날은 거지가 빨래를 한다.”는 속담이 있다며, 내일 날씨가 따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친구는 구름 속의 수증기가 물로, 물이 얼음으로, 그리고 얼음이 눈으로 변하면서 응결할 때, 열을 내놓기 때문이라고 부연설명까지 해줬다.
그러나 오늘의 날씨를 검색해보니, 오히려 어제보다 더 춥다고 하여, 불현듯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눈에 관한 구전속담이 비과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속담이 어느날 갑자기 어떤 학자가 만들어 낸 게 아니고, 예로부터 오랫동안 입으로 민간에 전해오는 격언과 잠언을 이르는 말로, 조상들의 경험과 지혜를 담고 있어 상당히 과학적이라고 알고 있었다.
특히 날씨 관련 속담은 그 원리가 과학적으로 입증될 만큼 정확한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어제 위 두 속담은 맞지 않는 것 같아 인터넷을 통해 눈에 관한 속담을 검색해봤다.
“눈 온 다음날 샛서방 빨래한다.”, “거짓말은 눈처럼 녹는다.”, “손님은 갈수록 좋고 눈은 올수록 좋다.”, “눈 위에 서리친다.”, “산이 울면 눈이 내린다.” 등등이 눈에 관한 대표적인 속담이다.
눈의 종류도 검색해봤다.
먼저 함박눈(snow flake)은 상공 1.5km의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따뜻한 공기에서 만들어지며, 습기가 많은 눈으로 결정의 모양은 육각형이고,
싸리눈(snow pellets)은 상공 1.5km의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의 찬 공기에서 만들어지며, 결정은 기둥모양이고,
가루눈(powder snow)은 함박눈에 비하여 미세한 눈 조각의 상태로 내리는 눈으로 습도와 기온이 낮고 바람이 강할 때 만들어지는 눈이고,
진눈깨비(sleet)는 비와 함께 내리는 눈이라고 한다.
나는 눈의 종류를 검색해보면서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비과학적이지 않고, 매우 과학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제 친구가 말한 “눈 온 다음날은 거지가 빨래를 한다.”와 어릴 적 할머님이 들려준 “눈이 내리면 날씨가 포근하다.”는 속담 속의 눈은 함박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산이 울면 눈이 내린다.”는 속담 속의 눈은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내리는 가루눈이고,
“눈 위에 서리친다.”는 속담 속의 눈은 찬 공기에서 만들어지는 싸리눈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어제 내린 눈이 싸리눈이었는데 친구와 나는 함박눈에 관한 속담을 언급했기 때문에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눈이 많이 오면 보리 풍년이 든다.”와 “쥐구멍에 눈 들어가면 보리농사 흉년 된다.”는 속담도 있는데, 여기서 눈은 눈이 쌓이면 가을철 심어둔 농작물이 따뜻하게 보호되고, 땅에 습기가 충분히 공급돼 봄철 가뭄이 예방되는 현상을 담고 있어, 모든 눈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는 선조들의 경험과 지혜가 녹아 있는 속담을 대할 때, 세상이 변해서 옛날의 속담은 비과학적이라는 생각을 접고, 이해가 안 되더라도 과학적인 근거를 찾는 방향으로 접근할 생각이다.
오늘 친구에게 “함박눈 온 다음날은 거지가 빨래를 한다.”고 전해줄 생각이다.
그리고 어제 내린 눈은 함박눈이 아닌 싸리눈이었다고도,
[단상]
나에게 “눈이 내리면 날씨가 포근하다.”고 말하면서, 밖에 나가 신나게 놀아도 좋다고 배려해주신 할머님의 인자하신 모습과 함박눈이 생각나는 아침입니다.
오늘 대한(大寒) 강추위가 기승을 부린다고 하니,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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