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육하원칙은 주로 기사를 쓸 때 지켜야 하는 기본원칙으로, ‘누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의 여섯 가지 순서로 구성된다.
이렇게 육하원칙 순서를 지켜서 기사를 쓰면 기사를 정확하게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읽는 사람도 이해하기 쉽다.
영어의 who, when, where, what, how, why에서 머리글자를 따 육하원칙을 5W1H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사 외에도 역사적인 사건이나 법조문 등 중대한 내용일수록 육하원칙 순서에 의해 서술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사나 중대한 사건은 육하원칙 순서에 의해 서술되어 왔지만, 실제 인류 역사는 육하원칙의 반대 순서로 진행되어 온 것 같아, 이 부분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산업화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인류는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고, 그래서 ‘Know Why’가 화두였다.
그러나 물건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중점을 두었던 산업화시대에는 인류가 일상에서도 ‘어떻게‘ 라는 방법이 가장 중요한 의제가 되면서, ‘Know How’가 주요 이슈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산업화시대를 거치면서 성장한 현재 기성세대에게 ‘Know How’는 매우 익숙한 용어로써 기사나 주요 사건을 넘어 일상의 대화에서도 자주 사용되어 왔다.
그 후, 지식경영시대에 인터넷의 등장으로 ‘Know How’가 누구나 손쉽게 알 수 있는 영역이 되면서, 인류는 미래에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고, 그 결과 ‘Know What’이 짧은 기간이지만, 우리 사회의 이슈가 되었다.
최근에는 인터넷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AI까지 등장하여, 더 이상 ‘Know How’나 ‘Know What’은 인류의 관심사가 아니고, 이제는 인류에게 “필요한 것이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한 ‘Know Where’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정보도 물품도 모든 것이 풍부한 현대사회의 이슈는 필요한 것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인류는 지금 ‘Know Where’도 뛰어 넘어 분초를 다투는 시간이 가장 중요한 시대에 살면서, ‘Know When’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추세라면 사람이 가장 중요한 ‘Know Who’시대도 곧 올 것도 같다.
결론적으로 글이나 기록은 ‘누가(Who) → 언제(When) → 어디에서(Where) → 무엇을(What) → 어떻게(How) → 왜(Why)’ 순으로 서술되지만,
역사는 ‘Know Why → Know How → Know What → Know Where → Know When → Know Who’ 순서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가 “인류 역사는 글이나 사건에 적용되는 육하원칙의 반대 순서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산업화시대를 정점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은 현대, 삼성, 롯데다.
그리고 이 3개 기업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든 장본인은 현대 정주영 회장, 삼성 이병철 회장, 롯데 신격호 회장이다.
이미 고인이 된 위 세분이 평소 자주했던 말에서 우리나라 기업도 육하원칙의 역순에 의해 발전해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정주영 회장은 생전에 직원들에게 "이봐, 해봤어?" 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행동을 중요시하는 정주영 회장의 "이봐, 해봤어?"라는 메시지에는 어떻게(How) 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고 행동으로 옮기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삼성 이병철 회장은 평소 임원회의에서 “미래의 먹거리를 찾아야 회사가 산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기존의 아이템으로는 급변하는 세상에서 낙오되기 쉬우니, 새로운 무엇(What)을 찾아야 한다는 게 이병철 회장의 메시지였다.
마지막으로 롯데 신격호 회장은 평소 직원들에게 "거기 가봤나?" 라고 자주 했다고 한다.
현장을 중요시하는 신격호 회장의 "거기 가봤나?" 라는 메시지에는 현장이라는 장소(Where)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 정주영 회장의 ‘Know How’ 경영철학에 이어, 삼성 이병철 회장의 ‘Know What’ 경영철학, 그리고 롯데 신격호 회장의 ‘Know Where’ 경영철학이 짧은 대한민국의 기업역사 속에서 세상은 逆육하원칙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다.
여기서 위 3개 기업의 회장들의 메시지 순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기업역사도 ‘Know How → Know What → Know Where’의 순서대로 진행되어 왔다는 점을 언급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마 “언제 할 건데?”라는 말과 함께 ‘Know When’ 경영철학을 가진 기업인도 현재 대한민국 어디엔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머지 않아 "누가 할 건데?"라고 말하며 'Know Who' 결영철학을 가진 기업인도 곧 나올 것 같다.
육하원칙 역순으로 돌아가는 지구촌의 모습이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단상]
육하원칙으로 서술된 5.18광주민주화운동 역사도 육하원칙 역순으로 더듬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