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시골에서 목회하는 잘 아는 K 목사가 여자 성도와 불미스러운 관계로 인해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K 목사와 사모를 만났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오해로 인해 발생한 억울한 사건이었지만, 그래도 목사와 사모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가까운 지인들까지도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매우 불안에 떨고 있었다.
자신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에 빠져 있는 K 목사와 사모를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대화하는 동안 계속 생각해봤다.
나는 불현 듯 어머니가 살아생전 본인 스스로가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고 계시다가도 우리 집보다 훨씬 잘 사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신나서 좋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것만큼 자신의 존재감을 상승시키는 것이 없다는 것을 어머니는 경험으로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사골에서 목회하는 K 목사가 어려운 형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K 목사에게 존재감을 실어주기 위해 “사실 내가 어려워서 돈을 좀 부탁하기 위해 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K 목사는 갑자기 자신의 누나에게 전화해서 돈을 보내달라고 말하면서 신이 났고, 오히려 빚진 자가 될 상황에 놓여 있는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물론 K 목사는 내가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이용해 돈을 빌리려고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아는 자이기에 내가 그 상황을 연출할 수 있었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은 같은 병자끼리 가엾게 여긴다는 뜻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들끼리 서로 동정하고 도와준다는 의미다.
만약 “나도 전에 여자 문제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었다”는 등의 동병상련의 상황을 연출해서 K 목사를 위로했다면 잠깐의 위로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K 목사에게 자신의 상황을 극복할 정도의 에너지는 주지 못했을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상대를 위로하고 섬긴다면서 돈을 주거나 일을 도와주고, 특히 상대방이 도저히 할 수 없는 부분 즉 가장 비참한 부분을 도와주면서 섬김을 실천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상의 위로나 섬김은 상대가 잘 할 수 있는 장점을 찾아 그 장점을 나에게 도와주도록 유도하고, 그래서 내가 상대에게 빚진 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K 목사가 누나로부터 돈이 입금됐다면서 송금할 계좌를 알려달라고 문자가 왔을 때, 나는 “갑자기 일이 잘 해결돼 돈이 필요 없게 됐네, 그리고 나는 친구의 어려움을 내일 같이 생각하고 도와주기를 좋아하는 K 목사가 있어 행복하다네,“ 라고 답해줬다.
K 목사에게 답 문자를 보내고 난 후,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빚진 자가 되기로 다짐했다.
단, 나에게 자신의 가치를 빌려주고 행복해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연로하고 가난한 부모일지라도 그 부모에게 자식이 찾아가 맛있는 음식을 사드리고 용돈을 주는 것보다 부모에게 뭔가를 부탁하면서 부모의 존재감을 키워주는 게 훨씬 더 큰 효도라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자식만큼 부모에게 빚진 자는 없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를 존경하고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픈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빚진 자가 되어야 상대에게 존재감을 주는 우리다.
[단상]
많이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에게 빚진 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더 아름다운 우리 사회가 되리라 믿습니다.